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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AN 데일리 3호] 칸 영화제 수상, ‘첫여름’ 허가영 감독 ‘영화의 무게를 알고 가치 있는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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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기자 noir1979@maxmovie.com
정유진 기자 noir1979@maxmovie.com

한국영화는 지금 신진 감독을 기다리고 있다. 고유한 목소리를 갖고 자신의 색채를 지닌 신인 감독을 향한 목마름이 깊어지는 지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그 갈증을 해소하는 결정적인 마당이 되고 있다. 그 중심에 「첫 여름」의 허가영 감독이 있다. 

폭넓은 이야기와 세계관을 담은 단편영화를 소개하는 섹션 ‘엑스라지’ 부문에서 관객과 만나는 「첫여름」은 이미 유명세를 얻고 있는 작품. 지난달 열린 제78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16명의 전 세계 영화 학도들의 작품이 초청된 라 시네프 부문에서 1등상을 받은 덕분이다. 칸에 이어 파리의 팡테온 시네마에서 작품을 공개한 허가영 감독은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간 관객과 더 가깝게 이야기를 나눈다. “관객과 일으킬 화학작용을 기다리고 있다”는 감독을 만났다.   

「첫여름」은 노년 여성 영순의 이야기다. 자신의 이름으로 진짜의 삶을 찾고자 하는 영순(허진)은 손녀의 결혼식 날 남자 친구인 학수(정인기)의 49재에 가고자 한다. 영화는 70대 여성 영순의 시선을 따라가는 러닝타임 31분의 단편영화다. 평생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을 이제야 풀어내려는 노년 여성의 욕망과 성, 그리고 자신을 찾는 여정을 그린다. 허가영 감독의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이다. 

▲ 20대의 감독이 노년 여성의 이야기를 만들기로 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원래 졸업작품으로 저와 가까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첫여름」은 좀 더 훈련하고 성장해서 장편으로 만들고 싶은 작품이었고요. 첫 아이템은 정육점에서 남자 친구와 임신 중단약을 밀매하는 여자의 이야기였어요. 제목이 「삼신할매」였는데 장르적인 도전을 하고 싶었습니다. 20대 청년으로서 날것의 분노를 폭발적으로 표현하면서 질주하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거든요. 다만 장르적인 도전이 두렵기도 했어요. 고민을 하면서 졸업작품으로는 뭔가 불편하면서도 제가 잘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정했어요.”

「첫여름」은 허가영 감독이 10대 시절 외할머니와 몇 개월 함께 살면서 겪은 경험에서 출발한다. 감독의 외할머니는 손녀에게 한없이 사랑을 퍼주는 전형적인 할머니의 모습과는 달랐다. 손녀보다 딸을 더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던 할머니였다. 당시 감독의 눈에 외할머니는 조금 다른 존재로 느껴졌고, 그 기억을 잊지 않고 쌓아 영순이 탄생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무작정 시놉시스를 썼는데 학교에서 반응이 좋았어요. 이야기의 기능을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고, 새로운 여성 노인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한 여자와 동행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도 섰고요.”

영화 '첫여름'의 한 장면. 사진제공=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 ‘첫여름’의 한 장면. 사진제공=한국영화아카데미

▲ 영화에서 영순은 자신의 욕망에 대해 솔직하게 드러내잖아요. 노년의 욕망이나 성, 살아온 삶의 만만치 않은 과정을 풀어냈어요.

“처음에는 손녀의 시점에서 영순을 바라보는 작품이었어요. 20대인 손녀가 결혼을 앞두고 할머니와 엄마까지 3대가 얽힌 이야기로 구상했어요. 학교 선생님들은 제가 젊고 어려서 영순의 시선을 알지 못할 것이라면서 손녀의 시선으로 시나리오를 쓰라고도 하셨죠. 우려의 이야기도 많았고요. 저도 영순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까 두렵기도 했어요. 할머니의 삶을 담보 삼아서 만드는 이야기라는 생각에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알 수 없는 허기와 두려움이 일어났어요. 그때 꿈에 할머니가 나오기도 했고요. 손녀의 시선으로 간다면 제가 영화를 만들 수 없겠구나. 그때부터 정말 별짓을 다 했어요.”

시나리오를 다시 쓰려고 독서실에 틀어박혔지만 18시간 동안 한 글자도 고치지 못한 답답함에 펑펑 울기도 했다. 결국 감독은 “나는 손녀가 궁금한 게 아니라 영순이 궁금해서 이 이야기를 썼는데 정작 20대의 눈으로 노인을 대상화했구나, 20대의 눈으로 보는 여성 노인을 판타지화 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크랭크인을 한 달 앞두고 불편한 허기의 이유를 찾은 감독은 손녀가 아닌 영순의 시선으로 시나리오를 단숨에 바꿨다. 스태프들의 우려와 반대가 교차하는 와중에 감독은 “밀어 부쳤다”고 했다.

▲ 졸업작품으로 불편한 영화를 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나요.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힘은 어찌 보면 폭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컴컴한 극장에서 감독의 세계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이잖아요. 그 시간만큼은 감독이 발언권을 갖고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관객에게 보여주는 시간인데, 그 무게를 알고 가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관객이 이 영화를 왜 봐야 하는지에 대해 응답을 해야한다고요. 우리가 사회 안에 있을 때 인지하지 못한 부분을 건드려주는 게 영화를 역할 중 큰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이야기가 울림이 있고, 경계를 넘어서는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처음엔 불편할 수 있지만 그런 영화야말로 사회적인 논의를 끌어올릴 수 있잖아요. 제 영화를 만나는 관객이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거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영화와 빗대어 보길 원해요. 그렇게 확장되는 삶에 영화로 미약하게나마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의미가 있겠죠.”

「첫여름」에서 영순이 가진 유일한 돌파구는 춤이다. 춤을 추다가 만난 학수를 통해 평생 알지 못했던 즐거움을 느끼고, 그래서 고마움도 크다. 오랜 투병 생활로 몸을 가누기 어려운 남편의 간병에 헌신했지만, 딸은 남자 친구가 있는 영순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딸 앞에서 영순은 자신의 삶을 단 몇 마디의 대사로 응축해 들려준다. 강렬하다. 영순은 배우 허진을 만나 생생한 생명력을 얻었다. 감독은 배우 허진과 “연애하는 것처럼 싸웠다”고 했다. 

▲ 허진 배우와의 작업은 어땠나요.

“많이 싸웠어요. 연애하는 기분으로요. 촬영 전에 선생님은 ‘나는 두 테이크 이상은 안 간다’고 하셨어요. 난리가 났죠. 스태프 모두 최대한 선생님께 애교를 떨자고 결심했으니까요. 정작 촬영할 때 많게는 10번 넘게 찍은 장면도 있어요. 영순이 딸과 담배를 피우면서 대화하는 장면인데 선생님께서 한 갑을 거의 다 피웠을 정도였죠. 능동적인 배우이고, 뭔가 세침한 여배우 같기기도 한데 존경심을 느낄 때가 많았아요. 현장에서 선생님과 저의 싸움은 건설적인 싸움이었어요.”

“대사를 놓고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싸움도 벌였고요. 선생님의 의견대로 제가 양보한 대사는 ‘그놈이 만져주면 동해’, 선생님의 반대에도 제가 끝까지 지킨 대사는 영순이 손녀에게 해주는 ‘남자는 자고로 널 즐겁게 해주는 놈이 최고야’라는 말이에요. 선생님은 너무 섹슈얼하다고 반대하셨지만.”

정유진 기자 noir1979@maxmovie.com
정유진 기자 noir1979@maxmovie.com

▲ 영순과 학수가 함께 밤을 보낸 뒤 발 장난을 치는 장면은 영화의 상징처럼 느껴져요. 어떤 의도가 담겨 있나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칸 영화제에서 「첫여름」의 초청을 결정할 때 그 발 장면을 보고 ‘너의 수상을 예상했다’고 하더라고요. 인간적이고 독창적으로 봤다고요. 시나리오에선 ‘영순과 학수가 장난을 친다, 서로 몸을 만지면서 장난을 친다’ 정도로 돼 있었는데 노인의 성적인 묘사를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면서 촬영감독과 밤새 콘티를 짰어요. 둘이 지칠 대로 지쳤을 때 서로의 발을 툭툭 건드리면서 그 장면이 떠올랐죠. 우리 할머니도 혈압 때문에 발을 올리고 있었는데 영순도 학수와 밤을 보내고 그러지 않았을까?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나오는 몸짓일 수 있겠다 싶었어요.”

허가영 감독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졸업 뒤엔 한 콘텐츠 플랫폼에서 일했다. 10대 때 학교를 관두고 검정고시로 졸업을 한 과정에서 “글은 해방구였다”고 했다. 늘 글을 쓰면서 마음을 표현했고, 그걸 영상으로 찍어보기도 했다. 모든 영화를 챙겨보는 마니아라기보다,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글을 찾았고 영상을 만났다. 

“저는 아웃 사이더이고 아무도 제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영상으로 만들면서 사화와 연결되는 감각이 너무 좋았어요. 제게는 가장 큰 성장처럼 느껴졌어요. 복수전공으로 정치 철학을 했는데 영화가 준 쾌감과 정치 철학도 맞닿아 있었어요. 20대의 절반을 그런 부분에 쏟았죠. 사회단체에 글도 쓰면서 사회를 변화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졸업할 무렵 미련이 생겼어요. 제 인생에 5년 정도 영화를 만들어보는 데 투자해볼 수 있지 않을까. 꼭 해보고 싶었어요.”

한국영화아카데미는 허가영 감독이 꿈을 실현하는 발판이 됐다. 칸에서 수상하고 돌아와 얼마 전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초대한 문화예술인의 일원으로 간담회에도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허 감독은 “청년 영화인으로 다양한 도전을 하기 어려운 제작 환경에 대한 불안함”, “칸 국제영화제에서 다시 한번 느낀 독립예술영화의 힘이 더 커져야 한다는 생각”,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돌이켰다. 

▲ 앞으로 어떤 부분에 주목해 작품을 이어갈지 궁금합니다.

“결국, 한 인간인 것 같아요. 저의 특기는 인물의 삶을 생생하고 세밀하게 그리는 것 같아요. 관객이 그 인물이 된 것처럼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영화를 하고 싶어요. 이런 사람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고 말하는 영화요. 어떤 인물의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캐릭터 무비를  계속하고 싶어요.”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객과 만날 텐데 어떤 바람을 갖고 있나요.

“영화를 칸에서 공개했지만 사실 한국의 관객을 너무나 만나고 싶었어요. 한국인이어서 사회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더 깊숙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잖아요. 더 날선 감각으로 제 영화를 봐주리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실지 그 화학작용이 기다려집니다.”

맥스무비
CP-2023-0089@fastview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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