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리물에 익숙한 이들에게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나인 퍼즐’ 속 범인 찾기는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극이 진행되면서 주인공 주변 인물이 시청자들의 의심을 샀고 큰 반전 없이 ‘그 인물’이 바로 범인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작품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은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이나 ‘충격’보다는 범인이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5일 ‘나인 퍼즐’ 종영과 맞춰 맥스무비와 만난 윤종빈 감독은 마지막 회를 시청자들과 실시간 ‘네이버톡’으로 함께 봤다고 말하며 “상상력도 추리력도 대단하더라. 제가 대본을 읽었을 때는 작가님이 의도한 대로 잘 낚였다”고 고백했다.
“범인이 밝혀지고 이유가 나왔을 때 수긍이 됐어요. 추리극을 보면 초반의 강한 설정이 강박적인 반전으로 무너지는 경우를 종종 봤거든요. 그래서 스토리텔링 자체가 ‘어떻게’보다 ‘왜’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공감 갔던 것 같아요. 만약 엄청난 반전이나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이가 범인이길 바랐다면 결말에 대해 호불호가 있었을 것 같아요. 사실 극중 손석구를 범인으로 생각하는 반응이 있을지는 꿈에도 몰랐죠. 하하.”
‘나인 퍼즐'(극본 이은미)은 연쇄살인을 저지르며 의문의 퍼즐 조각을 남기는 범인을 쫓는 미스터리 범죄 드라마다. 10년 전 벌어진 미결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현직 프로파일러인 윤이나(김다미)와 그를 용의자로 의심하는 강력팀 형사 김한샘(손석구)이 의문의 퍼즐 조각과 함께 다시 시작된 연쇄살인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을 그렸다. 지난 4일 총 11편의 이야기가 전부 베일을 벗었고 범인의 모습도 드러났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를 시작으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공작’ 등을 선보인 윤종빈 감독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 이후 내놓는 두 번째 시리즈 연출작이다. 특히 윤 감독이 처음으로 각본에 참여하지 않고 연출만 맡은 작품이기도 하다.
“‘수리남’ 이후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한 윤 감독은 제작사의 제안을 받고 전체 시리즈 가운데 한두 편만 연출하고 다른 감독에게 맡기려고 했지만 “배우들도, 플랫폼도 원했기에 때문에 결국에는 전편을 연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웃으며 “그래도 ‘수리남’ 때와는 달리 B팀(촬영을 분담하는)을 운용했다”고 말했다.

● 윤종빈 감독의 도전…”새로움 선택했다”
군대 내 폭력이나 호스트바, 조직폭력배, 마약 밀매상처럼 우리 사회의 특정 집단의 어두운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명해온 윤종빈 감독의 세계는 거칠고 날 것의 느낌이 강하다. 무엇보다 현실적이다. 사실감이 돋보이기에 화려한 영상미보다는 건조하고 절제돼 있다. 그런 점에서 ‘나인 퍼즐’은 그에게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나인 퍼즐’은 이나가 사건을 재구성하거나 한샘과 범인과 경찰로 나눠 역할극을 하는 등 마치 추리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안긴다. 아이 같은 말투, 추리를 할 때 쓰는 안경, 넥타이 착용 등 이나는 마치 일본 만화 ‘명탐정 코난’ 속 주인공 코난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샘은 늘 비니를 쓰고 있고 목에는 화려한 문신이 있다.
“대본을 읽을 때는 몰입도 있고 다음 회가 궁금했어요. 그런데 연출을 할 생각을 하니까 ‘이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죠. 또 ‘이나나 한샘 같은 독특한 인물이 존재할까?’라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주로 현실적인 작품을 많이 했던 터라 이 대본이 저에게 사실적이거나 현실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윤종빈 감독의 고민은 “이 작품이 추리 만화라면?”이라는 질문으로 풀리기 시작했다. 그는 “만화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초반에 이 작품만의 세계관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저에게 익숙하고 편한 방식도 있지만 새로움을 선택했다”며 “낯설 수는 있지만 이야기에 힘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봤다”고 했다.
이나의 겉모습은 ‘명탐정 코난’을 참고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윤 감독은 “가장 유명한 추리 만화이니까 시청은 했다”면서 “코난처럼 하려고 하기보다 안경을 쓰고 넥타이는 메니까 그냥 코난 같더라. 의도한 건 아니다”고 웃었다.
‘나인 퍼즐’ 마지막 회에서는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들이 전부 초고층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더원시티를 중심으로 얽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범인의 살인사건의 배경에는 과거 재개발 구역을 둘러싼 이권 다툼과 그로 인한 인간의 이기심이 얽혀 있었다. 이 과정서 2009년 발생한 ‘용산참사’의 비극이 떠오른다는 의견도 있었다.
윤 감독은 “작가님께도 물어봤는데 그건 아니라고 하더라. 한국 재개발 사례를 찾아봤는데 용역업체 중에서 굉장히 악질적인 업체가 있더라. 관련 논문도 있었다”면서 “실제로 용역업체가 사람들을 쫓아내는 방식의 사례들을 보면서 참고했다”고 덧붙였다.

● ‘나인 퍼즐’은..”어떻게보다 왜에 집중한 이야기”
윤종빈 감독은 범인이 밝혀지는 후반부 스토리텔링에 대해 “어떻게 범행이 이뤄졌는가 보다 왜 그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범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생각을 품게 됐는지 ‘왜’에 집중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범인의 동기는 그려졌지만, 실제로 어떻게 살인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묘사가 부족해 개연성이 아쉽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그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초반에는 보여줄 수 없지만 결과가 공개된 후반부에서 보여줄 것인지 말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였죠. 하지만 극 중 살인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충분히 유추 가능하다고 봤기에 장면을 넣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였거든요.”
앞서 “20년 영화 인생의 인맥을 총동원했다”는 윤 감독의 말처럼 ‘나인 퍼즐’에는 지진희, 이희준, 이성민, 황정민 등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이들은 극 중에서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등장한다. 윤 감독은 “마지막에 돼서야 이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유명하지 않으면 도저히 각인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면서 “존재감 있는 배우들이 필요했다”고 털어놨다.
“(황)정민 선배님과는 저녁을 먹다가 ‘시리즈를 한다’고 하니까 ‘특별출연할 거 없어?’라고 먼저 말씀해 주셨어요. 그래서 부탁드리게 됐죠.(웃음)”

● 차기작은 영화…”군인 주인공, 남자들만 나온다”
윤종빈 감독은 ‘수리남’ 이후 시리즈 연출에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나인 퍼즐’ 연출자로 다시 나섰다. 그는 “기존 영화와 드라마에 OTT 시리즈라는 새로운 매체가 생긴 것 같다. 극장에서 즐겼던 스릴러, 공포 같은 장르를 OTT가 해소해 주는 면이 있다”며 “이 작업을 하지 않겠다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기회가 되고 여건이 맞는다면 또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윤 감독은 “제 본업은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시리즈를 연출하면서 영화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됐어요. 요즘 영화산업이 워낙 힘든 상황이잖아요. 다음 작업이 어쩌면 마지막 영화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확실하죠.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영화계가 상생을 위해 애쓰고 있는 만큼 저 역시 영화 회복에 조금이라도 일조했으면 좋겠는 마음이죠.”
윤종빈 감독의 차기작은 영화다. 현재 2026년 봄 촬영을 목표로 캐스팅을 마무리 단계에 있다. 윤 감독은 “조만간 공식 발표가 있을 것”이라며 “제가 늘 해오던, 남자들만 나오는 이야기다.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처럼 군인이 주인공이다. 저의 남자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번에도 기대해 주면 한다”고 덧붙였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