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혼으로 경력이 단절됐던 연희(류현경)는 겨우 복직했지만 계약직 신세다. 그마저도 김해철 과장(김장원)의 도움을 받았기에 갖은 추파에도 애써 모른척할 수밖에 없다. 회사 내부의 문제만으로도 골머리를 썩고 있는데, 왕복 4시간의 지긋지긋한 출퇴근 교통체증을 견디고 집 앞에 도착하자 또다른 스트레스가 몰려온다.
주차를 해야 하건만 이웃의 차량이 도저히 들어갈 틈없이 대놓은 탓에 연희는 분통이 터진다. 차량에 부착된 번호로 전화를 걸어 다시 주차해 줄 것을 요청하지만, 이웃집 여자 말숙(장희정)은 오히려 신경질을 낸다. 그런 말숙에게 강한 집착을 보이던 전 애인 호준(김뢰하)은 스토킹을 하다못해 집으로 찾아가 결국 그녀를 살해한다.
자꾸만 선을 넘는 김해철 과장으로 인해 회사 생활에도 적신호가 켜져 힘든 연희는 여느 때처럼 여유 공간 없이 주차를 해놓은 말숙의 차를 발견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연희가 건 말숙의 전화가 계속해서 울리자 어쩔 수 없이 호준이 직접 내려가고, 한계에 도달한 연희는 화를 주체하지 못한다. 기분이 상한 호준은 다음날 연희 앞에 나타나 예의 없는 태도에 사과할 것을 요청하지만 무시만 당할 뿐이다. 그날부터 호준의 타깃이 된 연희의 일상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에 짓눌린다.
영화 ‘주차금지’는 사소해 보이는 문제들이 일상을 위협하는 현대 사회의 풍경을 극대화한다. 집 주변에서 이웃과 겪는 일들을 공포와 스릴러 등 장르로 풀어낸 ‘이웃사람’ ‘숨바꼭질’ ‘원정빌라’ ‘백수아파트’ 등 영화들이 주거공간을 침범한 이들이 야기한 불쾌함에 집중했다면, ‘주차금지’는 사적인 공간과 공유의 공간의 경계에 있는 공동 주차공간에서 벌어지는 불편함을 조명한다.

온전한 소유가 아닌 공유의 영역인 주차 공간은 임의로 정한 규칙으로 질서가 유지된다. 보이지 않는 선으로 나뉜 구역을 침범하는 행위가 당사자에게는 대수롭지 않을 수도있지만, 타인에게는 일상을 뒤흔드는 위협 신호로 다가오기도 한다.
영화에서 주차로 일어난 갈등을 조율하는 방식은 서로의 삶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아니다. 오랜 시간 쌓은 친밀감이 아닌 단지 편의에 의해 남겨둔 간단한 정보들로 이뤄지는 의사소통이기에 이웃의 거리감은 좁혀질 수 없다.
연희가 운전자석에 둔 회사 명함을 본 호준은 이름부터 직장까지 모조리 파악한다. 중고거래를 소재로 삼은 영화 ‘타겟’에서도 지적하듯, 인지하지 못했던 개인정보는 쉽게 노출되고 표적을 향한 방아쇠가 된다. “단지 주차 문제만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 없이 살아가는 오늘의 사회를 비추고 싶었다”는 손현우 감독은 직관적으로 이야기의 줄기를 뻗어나간다.
주차선에 맞춰서 차를 댔음에도 익명의 이웃으로부터 ‘주차 똑바로 하세요!’라는 메모를 받은 제작사 대표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이번 영화의 구체적인 형태가 만들어졌다. 과천의 복잡한 주택가, 서산의 한적한 도로와 버려진 주유소, 서울의 혼잡한 퇴근길 등의 장소들을 실제로 담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주차금지’가 포착하는 일상과 범죄의 연결고리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기에 익숙하게 느껴진다. 주차난으로 인한 이웃과 갈등을 겪고 살인 사건까지 벌어진 비극을 다룬 뉴스 보도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때문에 영화가 관객들을 이끄는 목적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일상의 소재를 쉽게 풀어내는 방식이 아쉽다.

감독: 손현우/ 출연 : 류현경, 김뢰하, 차선우 / 장르 : 스릴러 / 제작·배급 : 영화사 주단 / 공동제공·배급 : 플레이그램 / 개봉일: 5월21일 /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90분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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