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456번, 아직도 사람을 믿나?” 프론트맨(이병헌)이 성기훈(이정재)에게 던진 이 질문은, 어쩌면 그가 스스로에게 묻는 말처럼 들린다. 프론트맨은 456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상금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이기심과 서로를 죽음으로 내모는 살육의 현장에서 ‘인간성’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지켜봐왔다.
그런 프론트맨에게 여전히 인간을 믿으면서 게임을 멈추기 위해 또다시 게임장에 발을 디딘 성기훈은, 자신의 신념을 흔들고 애써 잊은 과거를 되비치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프론트맨은 그런 기훈의 믿음을 꺾기 위해 잔혹한 선택을 강요한다.
황동혁 감독이 예고했듯 프론트맨과 기훈 사이에서 벌이지는 “가치관의 승부”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피날레인 시즌3의 핵심 갈등이자, 이번 시즌이 관통하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다. 27일 공개된 ‘오징어 게임3’은 2021년 첫 시즌이 공개된 이후 4년 만에 완결을 맺는 작품으로, 인간에 대한 상반된 믿음을 지닌 프론트맨과 기훈을 통해 “나라면?”이라는 질문을 시청자에게 던진다.
‘오징어 게임’은 거액의 빚과 말 못 할 사정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을 모집해 목숨을 건 게임을 치르게 하고 최후의 생존자에게 456억원의 상금을 안기는 ‘피의 게임’이다. 천문학적인 상금을 앞에 두고 인간다움이 위협받는 극한의 상황에서 참가자들이 내리는 선택을 통해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민낯과 인간 본성의 양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처음 참여한 게임에서 ‘경마장의 말’처럼 취급받았던 기훈은 더 이상 그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겠다고 결심한 뒤 다시 돌아와 게임을 끝내기 위한 마지막 승부에 나선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시즌2가 일종이 파트1이라면, 이번 시즌3는 파트2의 성격이다. 각본가이자 연출자인 황동혁 감독은 시즌1에서 이어지는 후속편을 당초 하나의 이야기로 구상했지만, 이를 두개의 시즌으로 나눠 순차 공개한다.

● “영웅놀이” 취급 당했던 성기훈, 또 다른 변화와 선택은?
‘오징어 게임2’의 말미 기훈은 더 이상 게임을 이어갈 의지가 없는 참가자들을 설득해 주최 측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그 시도는 수많은 희생만 남긴 채 수포로 돌아갔다. 가장 친한 친구였던 정배(이서환)까지 잃게 만든 그의 행동은 프론트맨에 의해 그저 “영웅놀이”로 치부된다. 이번 시즌은 목숨을 건 반란 끝에 다시 게임에 발을 들인 기훈과 살아남은 참가자들이 맞이하는 마지막 선택과 운명을 따라간다.
반란 당시 겁에 질려 탄창을 가져다주지 못했던 대호(강하늘)와 다시 게임을 시작한 트랜스젠더 현주(박성훈), 임신한 채 생존을 이어가는 준희(조유리)와 그의 전 남자친구 명기(임시완), 탈락자를 처리하는 핑크가드 노을(박규영)과 그와 인연이 얽힌 경석(이진욱) 그리고 금자(강애심)와 용식(양동근) 모자 등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인물들의 이야기가 이번 시즌을 통해 마침표를 찍는다. 타노스(최승현)의 죽음 이후 남게 된 남규(노재원)와 민수(이다윗)의 모습 또한 마지막 생존을 향한 여정 속에서 주요하게 다뤄진다.
기훈은 또 한 번의 변화를 겪는다. 시즌1에서는 휘몰아치는 게임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렸다면 시즌2에서는 게임장 안에서 참가자들을 이끌고 주최자들에게 맞서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원치 않게 살아남은 기훈은 죄책감에 휩싸이며 자포자기한 상태이지만, 게임장 안에서 탄생한 생명이 결국 그를 움직이게 만든다. 이정재는 이번 시즌에서 “기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이다’는 결심하고 이를 행한다“고 예고했다.
프론트맨은 마침내 가면을 벗고 황인호로서 기훈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인호는 과거 기훈처럼 게임에 참가해 우승까지 한 인물이지만 전혀 다른 선택 끝에 지금의 프론트맨이 됐다. 그는 과거의 자신이 그러했듯 기훈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으며 인간성을 시험하고 선택을 지켜본다.
이들의 대립은 단순한 생존 싸움을 넘어 인간에 대한 믿음과 회의가 충돌하는 정면 승부로 이어진다.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걸은 두 사람의 대립은 이번 시즌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난 시즌에서 주요하게 다뤄졌던 ‘OX’ 선택도 이어진다. 시즌1에서는 첫 번째 게임이 끝난 뒤 게임의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OX’ 투표가 한 번 등장했다면 시즌2에서는 각 게임이 끝날 때마다 참가자들에게 계속 이어갈지 여부를 묻는다. 참가자들에 자율성을 준다는 명분이지만, 그 선택 자체가 또 다른 딜레마를 만들어내면서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졌고 이는 시즌3에서도 이어진다. 사람들이 탈락할수록 상금은 쌓여가고, 더 많은 돈을 얻고자 하는 욕망은 이들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게임의 스케일은 이전 시즌에 비해 훨씬 커졌다. 별이 가득한 골목길 미로에서 펼쳐지는 살육전과 ‘오징어 게임’을 상징하는 거대한 영희 인형이 높은 다리 위에서 줄을 돌리고 이를 참가자들이 넘는 장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찔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황동혁 감독이 ‘숨겨진 게임’이라고 밝힌 마지막 게임의 게임의 규모 역시, 이전 시즌을 훌쩍 뛰어넘는 압도감을 선사한다.
강점이 분명하지만, 이전 시즌에서도 지적됐던 ‘산만한 전개’를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도 크다. 게임이 끝날 때마 진행되는 찬반 투표는 어느 순간부터 기능적인 장치에 머무르고 참가자들의 ‘드라마틱한’ 선택들은 때론 의아함을 자아낸다. 반란을 일으키고 실패의 쓴맛을 본 기훈이 겪는 내면의 변화가 온전히 시청자들을 납득시키기에도 설득력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노을과 경석, 그리고 형 인호를 찾는 준호(위하준)의 여정은 기훈의 중심 서사와는 다소 결이 어긋나며 겉도는 인상을 준다. 각각의 이야기로는 충분히 흥미롭지만 기훈과 프론트맨의 대립이라는 중심 축과 유기적으로 맞물리지 않아 극의 긴장감을 분산시키는 측면이 있다.

● 한국 콘텐츠의 새 역사..글로벌 프로젝트 암시
흥행 결과와 다양한 평가를 떠나 ‘오징어 게임’은 그 자체로 한국 드라마의 새 역사를 쓴 작품이다. 시즌1은 공개 4년이 지난 지금도 2억6520만뷰의 성적으로 넷플릭스 역대 시청 순위 1위를 지키고 있다. 시즌2 역시 1억9260만뷰로 역대 3위에 오르며 흥행 저력을 입증했다.
이정재와 박해수 정호연 등 주요 출연진은 글로벌 스타로 도약해 할리우드의 러브콜을 받았고, 이정재의 남우주연상과 황동혁 감독의 감독상을 포함해 2022년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 시상식으로 꼽히는 에미상 6개 부문을 수상하는 대기록도 세웠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달고나 뽑기, 딱지치기, 공기놀이 등 한국의 전통 놀이 문화를 ‘데스 게임’이라는 장르에 녹여낸 독창적인 세계관은 국내를 넘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도 신선한 충격과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오징어 게임’은 끝났지만, 어쩌면 아직 끝나지 않은지도 모른다. 모든 이야기가 마무리된 뒤 등장한 할리우드 스타의 모습은 마치 데이빗 핀처가 연출한다고 알려진 미국판 ‘오징어 게임’의 서막을 알리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즌3의 엔딩은 또 다른 세계관의 확장을 암시하며 글로벌 프로젝트로 이어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연출·각본 : 황동혁 / 출연: 이정재, 이병헌, 임시완, 강하늘, 위하준, 박규영, 박성훈, 이진욱, 양동근, 강애심, 조유리, 이다윗, 노재원, 채국희, 박희순, 송영창, 전석호, 오달수 외 / 장르: 데스 게임, 스릴러, 서바이벌, 범죄, 액션 / 공개일: 6월27일 /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 회차: 6부작 / 플랫폼 : 넷플릭스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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