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는 최대한 한국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작업했어요. 한국의 모든 것을 담고 싶었죠. 이렇게 문화적으로 온전히 한국적인 영화가 미국 회사에 의해서 제작된다는 사실은 한국 문화가 가진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한국 문화가 얼마나 발전했고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서 개인적으로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공개돼 전 세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공동 연출한 매기 강 감독은 K팝 문화와 한국 토속신앙 등을 정교하게 융합한 독창적인 이야기로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강 감독은 서울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란 한국계 감독이다.
영화는 루미·미라·조이로 구성된 3인조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화려한 무대 위에서는 슈퍼스타로, 무대 밖에서는 악령과 맞서는 퇴마사로 살아가는 이중생활을 그린다. 마왕 귀마가 이들에 맞서 악령으로 구성된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를 인간 세계에 보내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 K팝 세계는 물론 팬덤 문화까지 정교하게 담아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만든 미국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했다. 공동 연출인 크리스 아펠한스 감독은 미국 출신이다. 대사 역시 대부분 영어로 이뤄졌지만 작품 전반에는 한국적인 색채가 짙게 배어 있다. 저승사자, 도깨비, 호랑이 귀신, 당산나무 등 전통 신앙의 요소뿐만 아니라 한약, 남산타워, 기와집 같은 생활문화와 건축물 그리고 응원봉과 굿즈 같은 K팝 팬덤 문화까지 세밀하게 반영돼 한국적인 감성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최근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는 김밥이나 매운 맛 라면 등도 소재로 적절하게 활용된다.
극중에서 헌트릭스가 보통의 아이돌이 아닌 자신들의 목소리로 악령을 쫓아내 세상을 지킬 방패인 ‘혼문’을 만드는 헌터라는 설정이다. 사자 보이즈는 멤버 전원이 악령으로 구성된 집단이라는 설정은 K팝과 뮤지컬 그리고 판타지와 오컬트를 결합한 신선한 시도로도 주목받고 있다.
작품 속 뮤지컬적인 요소는 한국 무속인들의 굿에서 영향을 받았다. 강 감독은 “굿이라는 건 음악과 춤으로 요괴들을 물리는 것이다 보니 영화의 콘셉트와 딱 맞을 것 같았다”며 “어떻게 보면 굿이 최초의 콘서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무당과 작품을 연결시키는 것이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 문화를 세밀하게 다루는 최초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다. 25일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투둠’의 순위 집계에 따르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6월 셋째 주(6월16일~22일) 920만 시청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며 영어 영화 부문 2위로 출발했다. 20일 공개돼 집계 기간 중 3일간의 수치만 포함됐음에도 높은 성적이다. 글로벌 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서 이 작품은 21일부터 25일까지 넷플릭스 영화 부문 글로벌 시청 순위 1위를 달성하며 전 세계적 인기를 입증했다.
강 감독은 K팝과 한국 문화의 힘에 대해 “한국인들은 모두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열정이나 감정을 다하고 이것을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것 같다”며 “요즘 K팝이나 K뷰티처럼 ‘K’가 앞에 들어가면 미국인들은 열광한다. 이이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의 문화가 정말 훌륭해졌고 이제는 전 세계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문화’라고 느낀다”고 강조했다.
● “헌트릭스·사자 보이즈, 모든 K팝 그룹 참고해”
작품에 나오는 헌트릭스의 ‘하우 이츠 던'(How It’s Done)과 ‘골든'(Golden) ‘테이크다운'(Takedown) 등 실제 케이팝을 떠오르게 하는 음원은 중독성 강한 사운드와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로 시청자들의 몰입감을 한층 끌어올렸다.
음악 작업에는 테디를 비롯해 그가 수장으로 있는 더블랙레이블 소속 작곡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방탄소년단(BTS)의 곡을 쓴 제나 앤드루 등 해외 아티스트들도 작곡자로 이름을 올렸다. ‘위키드’에 참여했던 음악 감독이자 프로듀서인 이안 아이젠드래스도 합류했다.
음악 작업 과정에 대해 강 감독은 “작품 속 음악이 진정한 케이팝 음악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돌이켰다. “잘 만들어진 진정한 케이팝다운 음악으로 만들고자 했고 한국의 K팝 레이블과 함께 협업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생각했다”며 “원타임 시절에 테디의 팬이었다”고 고백했다.
“당장 K팝 시장에 바로 음원을 발매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케이팝다운 음악으로 인지될 수 있을만한 음악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작업했어요. 그런데 K팝 음악으로 뮤지컬을 해본 적이 없어서 작곡가들이 곡을 쓰는 과정에서 7~8번까지 수정을 거치고 곡을 다시 쓰기도 했죠. 다층적이고 복잡한 과정을 통해 영화 속 음악들이 탄생했습니다.”
헌트릭스와 사자 보이즈 멤버들의 비주얼을 실제 K팝 아이돌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실제 이들의 외모가 어떤 K팝 가수를 참고해 만들어졌는지 궁금증을 낳기도 했다. 감독은 앞서 미국 경제지 포브스와 인터뷰에서 사자 보이즈의 진우가 배우 차은우와 남주혁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는 밝혀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디자인을 할 때 특정한 그룹이나 멤버를 레퍼런스로 삼지는 않았다”고 보충 설명을 했다.
“저와 크리스 감독님 다른 아티스트들도 본인의 취향이 있기 때문에 캐릭터를 누구처럼 만들고 싶냐는 논의를 할 때 보드를 만들었고, 이 보드는 결국 거의 모든 아이돌이 다 들어가서 엄청나게 커졌다”고 돌이키면서 “(캐릭터)디자인은 어느 한 그룹에서 나온 것은 아니고 모든 케이팝 그룹과 멤버들에게서 영향을 받아서 탄생했다“고 강조했다.

● ‘사내맞선’ 속 안효섭 보고..”‘진우구나’라고 느껴”
이 작품에는 배우 이병헌·안효섭·김윤진을 비롯해 아덴 조·메이 홍·다니엘 대 킴·켄 정 등이 영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이병헌은 영어뿐 아니라 한국어 더빙에도 목소리를 보탰다. 안효섭은 사자 보이즈의 리더이자 남자주인공인 진우를, 이병헌은 메인 빌런 귀마를 연기했다.
매기 강 감독은 SBS ‘사내맞선'(2022년)을 보고 안효섭에게 진우 역을 맡겼다. “‘사내맞선’의 한 장면에서 안효섭이 전화할 때 영어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 ‘아, 진우구나’라고 느꼈다”면서 “진우 역할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남자 배우를 찾고 싶었는데 영어를 완벽하게 해야해서 캐스팅이 어려웠는데 안효섭을 보고 단번에 선점했다”고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이병헌의 캐스팅에 대해서는 “너무나 영광스러웠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설레고 중요하다고 여겨졌던 경험 중 하나였다”고 떠올렸다. 그는 “이병헌에게 이 이야기에 대해 피칭하던 때가 기억이 난다. 그때 정말 많은 질문을 했고 저희그 구상하고 있는 콘셉트에 대해 멋지고 좋다며 동의해줬고 그 결과 성우로 참여해주기로 결정했다”고 섭외 과정을 밝혔다.
“개인적으로는 이병헌 배우와 함께한 게 남다르게 특별했던 지점이 있어요. 할리우드에 진출한 첫 한국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많이 존경스럽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거든요.”

무엇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의 문화와 K팝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국내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헌터들과 악령의 전투 장면에서는 조선시대 무기인 사인검(루미), 월도(미라), 단검(조이) 등 각기 다른 전통 무기를 활용한 디테일이 눈길을 끈다. 작품 곳곳에는 인사 예절이나 목 상태가 나빠지자 한의원에서 한약을 짓는 모습, 수저 밑에 티슈 한 장을 깔아두는 습관 등 디테일한 한국 고유의 문화와 전통 건축물과 현대 도시 풍경이 어우러져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조화롭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 감독은 “대부분의 경우 저의 개인적인 어린 시절 경험에서 나왔다. 음식은 한국 문화에서 너무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이지 않나. 음식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기 상당히 까다롭고 어렵지만 너무 중요한 부분이라서 꼭 해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한 아티스트가 ‘X'(구 트위터)에서 ‘수저 밑에 냅킨 까는 것은 내 아이디어였다’고 올렸는데 실제로 이 분이 그걸 중요하다고 말해준 기억이 있다”고도 했다.
“디자인을 할 때 팀원 10여명과 리서치를 위해 한국에 여행을 갔어요. 여행을 통해 모든 부분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했죠. 북촌 같은 경우 그 골목이 얼마나 가파른지와 같은 디테일은 그 장소에 직접 가봐야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민속촌도 가고, 명동 거리의 벽돌이나 길 디자인은 어떻게 생겼나 살펴봤죠. 느낌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사진도 찍었고 제작진이 모든 콘셉트와 애니메이션에 한국적인 요소를 녹여주셨죠.”
이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한국분들의 손길이 들어가 있다”며 “그분들이 이렇게 한국적인 요소가 많이 담긴 작품을 만든다는 것 자체를 기뻐했고, 오랫동안 이런 작품을 기다려왔기 때문에 모든 요소에 한국적인 디테일을 가미하는 것에 흔쾌히 함께해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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