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기가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렇다고 회사와 일이 전부인 종록(배역)처럼 연기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에요.”
지난 달 30일 개봉한 영화 ‘소주전쟁’의 주연배우 유해진이 극중 인물의 삶과 실제 삶의 비교에 한 말이다.
‘소주전쟁’은 1997년을 배경으로, 부도 위기에 처한 소주 회사를 둘러싸고 회사를 지키려는 이와 이 회사를 삼키려는 이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유해진이 회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국보그룹 재무이사 표종록을 연기했다. 종록은 “회사가 잘 돼야 내가 잘 된다”고 생각하며 회사와 일을 우선하는 인물이다. 그 때문에 아내와 자식에게 버림받고 쓸쓸하게 살아가는 인물로도 그려진다.
●”회사 위해 개인 삶 포기 나는 못해”
유해진은 “가정이 없으니까 연기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만약 나한테 가정이 있다면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가정을 챙길 것 같다”며 “자신의 회사도 아닌데 회사와 직원을 위해서 인생을 바치는 종록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종록이 그릇이 큰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다. 이 작품을 선택한 여러 가지 이유 중에는 남을 위해 사는 인물에 끌렸던 것도 있다”고 덧붙였다.
“종록은 가정에서 보면 이기적인 사람이고, 회사에서 보면 희생적인 사람이죠.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 대부분의 가장들이 종록처럼 살지 않았을 까요. 그런 사람들 덕분에 우리나라가 IMF 외환위기를 비롯해 여러 가지 큰 위기를 극복해온 것 같아요. 저라면 절대로 못 했어요. 제가 아는 사람이 종록같은 인생을 산다면 인범(이제훈)이처럼 자기 인생 살라고 말렸을 것 같아요.”
종록이 지키려는 회사를, 삼키려고 하는 이를 이제훈이 연기했다. 이제훈 연기하는 최인범은 글로벌 투자 회사 솔퀸의 직원으로, 회사를 돈버는 수단으로 여기는 인물이다. 종록에게 일과 삶을 동일시하는 기성세대의, 인범에게 일과 삶을 분리하는 요즘 세대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 ‘소주전쟁’은 토종 소주 회사가 글로벌 투자 회사에 먹히는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내는 과정에서 사고방식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묻는다.
유해진은 “그 시절에는 종록 같은 사람이 필요했지만 요즘 같은 시절에는 인범 같은 삶의 태도, 사고방식이 더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행복의 기준은 제각각”이라며 “‘소수전쟁’이 이런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에서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생각 거리 주는 영화…스코어 아쉬워”
‘소주전쟁’은 실제로 있었던 인수합병 실화에서 소재를 얻어 흥행 타율 높은 유해진과 이제훈 두 배우를 주연배우로 내세워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는 같은 시기에 개봉한 이재인 안재홍 주연의 코믹 액션 ‘하이파이브’, 톰 크루즈 주연의 첩보 액션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등 오락성 짙은 영화들에 밀려 성적이 부진한 모습이다. 개봉 관객 반응 및 평점 등도 좋아 주연배우의 입장에서는 더 아쉬움이 크다.
“작품을 할 때부터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까’ 생각을 했지만, 작품이 던지는 의미가 좋아서 선택을 했어요. 오락적인 영화도 중요하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질 수 있는 작품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소주전쟁’이 그런 영화예요. 어제(8일)도 무대인사를 했는데 영화를 본 관객은 정말 좋아해요. 영화를 보고 나서 울었다는 분들도 있었어요. 저도 영화를 괜찮게 봤고, ‘소주전쟁’이 뒷심이 생겨서 좀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소주전쟁’의 흥행 부진은 치열한 경쟁 상황과 더불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사태 이후 활력을 잃어가는 영화 시장 상황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나마 유해진은 감염증 사태 속에서도 ‘올빼미’ 332만명, ‘파묘’ 1191만명, ‘야당’ 337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성공을 이끌었다.
“지금 영화 시장은 제가 참여한 일부 작품들이 잘 된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재미, 맛을 잃어가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그 재미를 일깨울 수 있는 작품이 연이어 터져주면 좋을 텐데 시동이 걸릴 만하면 꺼지고 걸릴 만하면 꺼지니까 그게 많이 아쉽고 걱정이죠.”

●”이제훈, 극장 살리기 운동 대단해”
그러면서 유해진은 이번 작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이제훈을 “대단하다”고 치켜세웠다. 이제훈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독립·예술영화들을 상영하는 작은 영화관을 소개하고 있는 점을 높이 산 것이다.
“이제훈 배우가 진짜 대단한 게 극장 살리기 운동을 하고 있어요. 어떻게 그런 큰 생각을 했는지…. 그런 생각을 하더라도 실천을 한다는 건 또 별개거든요. 후배지만 참 대단해요.”
유해진과 이제훈은 이번 작품에서 처음 호흡을 맞췄다. 유해진은 후배들에게 ‘같이 작업하고 싶은 선배’로 늘 꼽히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이제훈도 “1990년대~2000년대 한국 영화에 빠져서 볼 때 그 중심에 유해진 선배가 있었다”며 “언젠가 작품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는데 이번에 함께 하게 돼 기대가 컸다”고 밝혔다.
“촬영할 때는 후배가 아니라 그냥 동료라고 생각하며 작업해요. 다들 작품을 할 때에는 자기 나름대로 분석을 해올 텐데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인정해 주고 같이 호흡을 맞춰나가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후배들이 그렇게(같이 작업하고 싶은 선배) 생각해 준다면 저로서는 고맙고 다행이죠. 이제훈 배우는 촬영할 때 선배라고 불렀는데 촬영을 마치고 나서 형이라고 불러줘서 그게 또 기쁘고 고맙더라고요.”

●’왕과 사는 남자’ 막바지 촬영 중
영화계가 어렵다 보니 신규 영화에 대한 투자·제작이 줄어든 상황에서도 유해진은 그나마 끊임없이 활동하는 몇 안 되는 배우다. 영화만 출연하던 배우들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으로 속속 진출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영화 한 우물을 파고 있다. 그는 지금 장항준 감독의 신작 ‘왕과 사는 남자'(가제)를 촬영하고 있다. 이날도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대로 촬영을 위해서 문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촬영이 끝나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하루하루 즐겁게 촬영하고 있어요. 내년 쯤 만나보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영화계가 너무너무 힘드니까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네요. 우리끼리는 ‘지금이 화양영화다’ 생각하면서 열심히 촬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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