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과보다 그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이 좀 더 정직하고 올바르길…”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4명의 전공의들은 1년간의 혹독한 수련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한다. 지금은 비록 잠은커녕 끼니 때우기도 어려운 고단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 고난의 끝에서 누구도 감히 할 수 없는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된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지 1년이 훌쩍 지난 현실에서,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온전히 판타지로 다가온다.
18일 막을 내린 tvN 토일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대학병원 산부인과 레지던트 1년차인 4명의 주인공과 이들을 이끄는 4년차 선배의 성장과 사랑을 12부작으로 그렸다. 마지막회에서 새롭게 임용된 교수가 누구인지 결정된 가운데 선정 이유를 설명하는 대사는 이 드라마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드러낸다.
“어떤 순간에도 믿음과 신뢰를 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뽑고 싶은데, 그건 책상에서 이 종이 쪼가리나 보고 있는 우리보다 필드에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간호사 선생님들, 전공의 선생님이 더 잘 알 것 같아 조언을 구해봤는데요.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결과보단 그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이 좀 더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을 교수로 임명하려 합니다.”
자기만 알던 이기적인 명은원이 아닌, 주변을 아우르는 추민하가 결국 교수가 됐다. ‘정직’과 ‘올바름’의 길로 나아가는 의사들을 기다리게 만든 대사다.

● 드라마 속 전공의들, 현실에 있더라면…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전공의 1년차인 주인공 4명을 ‘요즘 애들’로 묘사한다. 선배에게 “MZ 모르세요?”라고 묻고, 저녁밥 같이 먹자는 교수나 선배들의 제안을 바로 거절한 뒤 혼자만의 시간을 챙긴다. 수술을 도와달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건네는 교수의 말에 숨은 진짜 뜻을 알려고 하지 않는 모습도 반복해 보여준다. 상대방과 관계 맺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온전히 자신에 집중하려는 인물들로 1년차 전공의들을 그린다.
극적인 재미를 위해 다소 과장된 설정들로 출발한 드라마는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아픈 환자들과 어려움을 겪는 보호자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나’ 보다 ‘주위’를 먼저 살피는 의사로 성장하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실력도, 마음도 서툴렀던 주인공들이 서로를 이해하면서 먼저 손길을 내밀 수 있게 된 건 1년 동안 혹독하고 치열하게 보낸 전공의 생활로 가능했다.
그 중심에 있는 오이영(고윤정)은 늘 사표를 품고 살면서 툴툴대지만, 자신에 주어진 책임을 거부하지 않고 ‘진심’과 ‘실력’으로 앞장선다. 언제든 의사 가운을 벗을 준비가 됐다고 말하지만 아픔을 겪는 환자 앞에서, 어려움을 겪는 동료의 곁에서, 먼저 나서는 용기를 지녔다. 몸과 마음이 아파 병원에 갔을 때, 꼭 주치의로 만나고 싶은 인물이다.
현실에도 오이영이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게 되는 이유는, 이번 드라마와 현실을 떼어 놓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 의대 정원 확대로 인해 촉발된 전공의파업과 그에 따른 의료대란의 여파가 여전한 가운데 환자를 먼저 생각하지 않는 일부 의료진을 향한 비판도 나오는 상황. 이와 맞물려 공개한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완전히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어쩔 수 없이 자꾸만 현실을 떠오르게 해 온전히 몰입할 수 없게 만든다.

엇갈린 시청자의 반응은 기록으로도 나타났다.
세계관을 공유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가 방송 내내 10%대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것과 달리 이번 드라마는 한 번도 10%대의 벽을 뚫지 못했다. 최고 기록은 마지막회의 8.1%(닐슨코리아·전국기준). 의료진의 활약이나 분투보다 실수를 더 많이 하는 신입 의사들의 이야기가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은 여파다.
그 아쉬움을 상쇄한 건 로맨스다. 사돈 관계로 사랑을 키워가는 오이영(고윤정)과 구도원(정준원)의 러브스토리가 드라마를 주목받게 한 결정타가 됐다. 먼저 사랑을 고백한 오이영의 대담한 행동들, 서서히 마음을 여는 구도원의 순수한 모습에 시청자들이 반응하기 시작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급기야 전공의들의 사랑에 방점을 찍으려는 듯 후반부에 이르러 오이영과 구도원 외에도, 엄재일(강유석)과 김사비(한예지)의 관계 변화, 표남경(신시아)와 인턴 탁기온(차강윤)의 미묘한 관계를 보여주면서 사랑으로 꽉 찬 해피엔딩을 선택했다.

● 신인 등 새 얼굴 발굴하는 능력, 이번에도 증명
신인들과 인지도는 낮지만 실력을 갖춘 새 얼굴들을 과감하게 발굴해 신선함을 높인 점은 미덕이다. 이미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부터 신인들을 기막히게 찾아내 스타로 만들고, 연기는 잘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배우에게 로맨스 지분을 몰아주면서 인기를 얻게 만드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 제작진의 선구안은 이번에도 적중했다.
드라마의 최대 수혜자가 정준원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이미 10년 넘도록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동한 배우이지만 이번 드라마를 기점으로 존재감이 완전히 달라졌다. 고윤정의 전폭적인 사랑 고백을 받을 땐 순진하고 순수한 모습을, 1년차를 이끄는 선배일 땐 믿음직한 실력을 보이면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이번 드라마가 첫 연기 도전인 한예지, ‘폭싹 속았수다’에서의 활약이 운이 아닌 실력임을 증명한 강유석도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몸값을 자랑하는 일부 톱스타에 의존하지 않고 가능성 있는 배우를 찾아 스타로 만드는 ‘신원호 이우정 사단’의 특별한 노하우가 어김없이 통했다.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의심할 필요 없이 건강한 드라마다. 지금 병원에 가면 묵묵하게 제 일을 하는 오이영이나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엄재일, 오차 없는 실력자인 김사비, 속마음까지 터놓을 수 있는 편안한 표남경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지게 만든다. 현실에서는 채울 수 없는, 드라마가 준 대리처방전이다.


크리에이터 : 신원호, 이우정 / 연출 : 이민수 / 극본 : 김송희 / 출연: 고윤정, 신시아, 강유석, 한예지, 정준원 외 / 장르: 로맨스 성장 / 공개일: 2025년4월12일 / 관람 등급: 15세 이상 시청가 /회차: 12부작 / 방송사: tvN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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