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7년 ‘홍길동’부터 시작된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의 역사 속에서 자칫 잊힐 뻔했던 작품 그리고 그 창작자의 이름. 1968년 1월 개봉한 ‘손오공’과 연출자 박영일 감독이다. ‘손오공’은 한국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꼽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소중한 유산의 가치를 지닌다 할 만하다. 하지만 당초 67분 분량의 필름은 일부 장면이 유실된 채였다. 이를 연출한 박영일 감독은 한국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의 신동헌 감독에 비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왔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이 이를 4K 화질로 복원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영상자료원 조해원 디지털복원팀장은 4일 “춘천애니메이션박물관의 원화, VHS 자료,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유한 매체를 비교, 검토해 51분 분량의 35mm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이 원본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확인돼 이를 바탕으로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조 팀장은 이날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이 함께 연 ‘2025 애니메이션 필름 디지털 복원 포럼’을 통해 ‘손오공’의 필름 디지털 복원과 아날로그 보존 사례를 설명했다. 그는 “4K 스캔부터 편집, 색보정, 영상 및 음향 복원에 이르는 디지털 복원의 전 과정”을 소개했다.
‘손오공’은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이제 원본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일반에 공개될 채비를 차리고 있다.
이와 함께 영화를 연출한 박영일 감독 역시 새롭게 주목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날 포럼에서 한태식 중앙애니메이션 대표는 “’손오공’의 제작사 세기상사가 박 감독에 대해 어느 정도의 신뢰가 있었다”고 말했다. 세기상사가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데 있어 “▲시네마스코프 상영을 위한 애니메이션 ▲60분 이상 분량의 장편을 6개월 안에 완성 ▲이 조건을 조율할 수 있는 경력자”를 원했고, 이를 충족시킬 만한 연출자로 박 감독을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박 감독은 이미 국립영화제작소 미술팀에서 10분 분량의 단편영화를 한 달에 한 편씩 만든 경험을 지녔던 덕분이었다.
‘손오공’의 복원과 박영일 감독에 대한 시선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새롭게 들여다보는 소중한 현미경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신동헌을 대신할 인물로 꼽힌 박 감독의 초기작과 그가 성취하고자 했던 기술적 특성”(한태식)을 통해 한국 애니메이션의 초기 역사의 시대를 새롭게 복원할 수 있으리라는 시각이다.
한편 이날 포럼에는 전 중국전영자료관 제작부 및 디지털자료관리부 부장을 지낸 리타오 감독이 중국 최초 장편 애니메이션 ‘철선공주’의 4K 복원 과정을 소개하기도 했다. 리타오 감독은 “향후 한국영상자료원 등 한국 영화계와 중국 영화계가 협력해 다양한 영화를 발굴, 복원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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