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의 극대화다.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가 팬들을 지키려 악귀에 맞선다? 실사영화였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를, 황당하지만 기발한 이야기가 K팝 문화의 기반 위에서 정교하게 탄생했다.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생동감 넘치는 작화도 탄탄하지만, 무엇보다 노래의 힘이 강하다. K팝 애니메이션으로 눈부신 흥행 성과를 거두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주인공은 글로벌 팬덤을 자랑하는 3인조 걸그룹 헌트릭스. 월드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이들에겐 비밀이 있다. 화려한 무대에서 내려오면 팬들을 구하기 위해 악령에 맞서는 퇴마사가 되는 이중 생활을 한다. 대대로 인간의 영혼을 빼앗아온 악령 귀마는 자신의 명령을 따르는 저승사자들을 보이그룹으로 만들어 인간 세계로 보낸다. 그렇게 탄생한 5인조 사자보이즈는 수려한 외모와 노래를 앞세워 단숨에 팬들을 사로잡지만 헌트릭스의 리더 루미 눈에는 이들이 예사롭지 않다. 루미와 사자보이즈의 리더 진우는 대립을 하다가, 서로의 비밀에 다가가면서 귀마의 공격을 함께 막아 낸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기획부터 완성까지 온전히 K팝 문화에 기대 탄생한 애니메이션이다. 연출을 맡은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감독은 이민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태어나 겪은 경험과 체득한 문화를 영화에 쏟아부었다. 최근 K팝의 막강한 글로벌 영향력과 이를 기반으로 더욱 확장하는 K뷰티, K푸드, K패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한국 문화를 섬세하게 포착해 작품에 골고루 담았다. 철저하고 집요한 자료 조사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실제로 헌트릭스의 멤버들은 고단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김밥과 매운맛 컵라면을 먹고 스트레스를 푼다. 남해의 고급 리조트에서 보내는 꿀 같은 휴식, 피곤하면 양머리 수건을 쓰고 목욕탕에 가야 하는 습관도 있다. 이들의 매니저는 한술 더 뜬다. 휴대전화 벨 소리가 전통가요 ‘신라의 달밤’이다.
퇴마를 할 때 루미가 휘두르는 사인검은 실제 호랑이의 기운을 넣었다는 뜻을 지닌 조선시대 전통 명검에서 모티프를 얻어 디자인했다. K팝 문화를 상징하는 응원봉, 각종 굿즈를 챙기면서 공연장을 가득 채운 팬덤의 모습은 흡사 블랙핑크의 콘서트 실황을 극화한 듯 생동감이 넘친다. 전통 문화부터 현재 K팝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구축한 디테일의 승리다.
그 중심에 노래가 있다. 헌트릭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K팝 그룹이라는 설정. 이들이 부르는 ‘하우 이츠 던'(How It’s Done) ‘골든'(Golden) ‘테이크다운'(Takedown) 등 노래는 실제 빌보드 차트에 당장 올라도 이상할 것 없는 완성도를 갖췄다. 빅뱅부터 블랙핑크, 그리고 솔로로 나선 로제까지 K팝의 글로벌 돌풍을 이끈 프로듀서인 테디가 이번 영화의 곡 작업에 참여해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 K팝의 씨앗을 심었다. 모든 노래가 계속 듣고 싶어지게 만드는 강력한 중독성을 지녔다. 참고로, 매기 강 감독은 테디가 1998년 결성한 4인조 힙합그룹 원타임의 ‘원년 팬’이라고 한다.
트와이스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글로벌 성공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K팝 그룹이다. 엔딩을 파워풀하게 장식하는 헌트릭스의 곡 ‘테이크다운’을 직접 부르면서 이 영화가 ‘찐 K팝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을 재확인시킨다. 트와이스와 헌트릭스의 합동 무대가 기다려진다.
이어 더해 멜로망스의 노래 ‘사랑인가 봐’와 듀스가 무려 1993년에 발표한 곡 ‘나를 돌아봐’는 한국어 원곡으로 담긴 점도 눈에 띈다. K팝 문화뿐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 발전사에서 중요한 노래들을 원곡으로 활용한 전문성과 완성도 역시 국내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힘이다.
● 다소 황당하고 유치하지만 보기 시작하면 빠져드는…
K팝과 오컬트를 접목한 시도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외연을 넓힌 결정타가 됐다. 사자보이즈의 리더 진우는 전생으로 묘사되는 과거에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어린 자녀와 아내를 배신하고 귀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극중 인간의 영혼을 빼앗는 이세계의 관문을 지칭하는 ‘혼문’도 중요한 설정. 영어가 아닌 한국어 그대로 “혼문”으로 불린다.
갈등하는 진우는 루미와 만나 변화하기 시작한다. 강력한 악령과 저승사자, 이에 맞선 퇴마사들의 대결을 화려한 액션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저마다 깊은 상처를 지닌 사연까지 녹여내 몰입도를 높인다. 진우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안효섭의 안정적인 영어 더빙 연기도 신의 한 수가 됐다.
귀여운 캐릭터들도 대거 등장한다. 진우를 늘 따라다니는 파란색 호랑이 더피와 갓 쓴 까치 서씨는 조선시대 민화 작호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만화에 주로 등장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만의 캐릭터 활용법이 이번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도 녹아 있다.
사실 아무리 설명 해도, 보지 않고선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진가를 가늠할 순 없다. 다소 황당하고 때론 유치하게 느껴지는 설정이지만 일단 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게 하는 강력한 매력을 지녔다. 단순히 K팝 등 K-컬처를 세밀하게 묘사했다는 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이다.
그동안 각종 글로벌 차트와 월드투어를 휩쓸고, 빌보드 등 시상식 등에서도 눈부신 성과를 낸 K팝의 저력이 이젠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깊숙이 뿌리내려 성공적인 성과를 거뒀다는 사실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새로운 이정표로 평가할 만하다.
감독: 매기 강, 크리스 애플한스 / 출연: 아든 조, 안효섭, 메이 홍, 유지영, 김윤진, 조엘 킴 부스터, 라이자 코시, 그리고 대니얼 대 김, 켄 정, 이병헌 / 제작: 소니픽처스애니메이션 / 스트리밍: 넷플릭스 / 장르: 드라마 오컬트 / 공개: 6월20일 /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99분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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