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애니메이션이 글로벌에서 비상하고 있다. K팝과 K드라마, K무비에 이어 이제 K애니메이션이 다음 한류 콘텐츠로 주목받는 가운데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의 움직임이 국내외에서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개국에 동시 공개된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이 별에 필요한’(감독 한지원)은 그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배우 김태리와 홍경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으며 넷플릭스가 직접 투자하고 제작까지 참여한 첫 한국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2050년 서울을 배경으로 화성 탐사를 꿈꾸는 우주인 난영과 음악을 포기한 청년 제이의 만남을 그리는 이 작품은 레트로와 사이버 펑크를 결합한 세계관과 수려한 작화로 시선을 끈다. 유려한 빛의 흐름과 감각적인 영상미는 ‘너의 이름은.’ ‘스즈메의 문단속’ 등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신카이 마코토 작품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영화 비평사이트 로튼토마토에 따르면 2일 기준 ‘이 별에 필요한’은 91%의 신선도 지수를 기록 중이다.
한지원 감독은 맥스무비와의 인터뷰에서 넷플릭스와 같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으로 인해 한국 애니메이션이 기존과 다른 창작 환경을 맞이했다고 평가했다. 한 감독은 현재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해 “그 자체만으로 수익을 내기 어렵기에 캐릭터나 완구 등 2차 수익을 염두에 둔 상황에서 영유아나 교육용 콘텐츠 중심의 투자 모델이 굳어져서 다른 시도를 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OTT의 활성화로 “새로운 것을 제안하고 시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사업도 OTT와 연계해 기획되거나 라프텔 같은 플랫폼을 통해 ‘그 여름’ 같은 작품도 소개됐다”고 짚었다. 라프텔은 대한민국의 애니메이션 OTT 서비스로, 구독자들에게 다양한 장르의 애니메이션을 제공한다.
지난 2월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퇴마록’(감독 김동철)은 이우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퇴마사들이 절대 악에 맞서는 대서시를 그린 작품으로,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과 미장센으로 국내 누적 관객 50만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을 돌파하며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흥행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튀르키예 등 12개국에 판매되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호응을 얻었다. 속편 제작에 대한 기대 또한 높은 상황이다.

● 북미·칸 사로잡은 한국 애니메이션
북미 시장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온다. ‘킹 오브 킹스’는 미국 부활절 시즌인 4월11일(현지시간) 북미에서 개봉해 개봉 17일 만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북미 누적 수익(5384만달러)을 뛰어넘었고, 지난달 26일 기준 6640만달러(915억원)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킹 오브 킹스’는 한국의 시각효과(VFX) 전문 제작사 모팩스튜디오가 제작한 극장용 3D 애니메이션으로, 국내 시각효과 기술의 1세대로 꼽히는 모팩스튜디오의 장성호 대표가 연출·각본·제작을 맡았다.
영국 고전 작가 찰스 디킨스의 유작 ‘예수의 생애'(The Life of Our Lord)에서 영감을 받은 이 영화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가장 위대한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예수의 생애를 조명한다. 한 아이의 시선을 통해 희망과 사랑, 구원의 메시지를 담아낸 이 작품은 장성호 감독이 2015년부터 준비한 이 작품은 기획부터 개봉까지 10년이 소요됐다.
장성호 감독은 맥스무비와 인터뷰에서 “기독교 관련 영화가 의미는 있지만 신앙심 깊은 분들에게만 소구된다는 한계가 있었다”면서 “이 작품을 기획할 때는 비신앙인과 일반 관객들도 설교를 듣거나 강요받는 느낌이 아니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에 목표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8회 칸 국제영화제에서는 정유미 감독이 연출한 단편 애니메이션 ‘안경’이 비공식 부문인 비평가주간 단편 경쟁 부문에 초청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정 감독은 2009년 ‘먼지아이’로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진출한 바 있다. ‘안경’은 안경원을 찾은 여자가 시력 검사를 하면서 내면의 그림자를 마주하고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위상은 충무로의 대표 감독들이 잇달아 합류하며 더욱 높아지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미키 17’에 이은 차기작으로 심해 생물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그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로 프랑스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작가인 크레를 누비앙의 책 ‘심해'(2006년)를 원작 삼고 있다. ‘만추’ ‘원더랜드’의 김태용 감독 또한 연극 원작 애니메이션 ‘꼭두’의 연출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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