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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서생’부터 ‘히든페이스’까지, 인간 본성 탐구하는 김대우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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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든페이스’에서 성진 역의 송승헌(왼쪽부터)과 미주 역의 박지현. 사진제공=스튜디오앤뉴

김대우 감독이 2014년 ‘인간중독’ 이후 10년 만에 네 번째 장편영화 ‘히든페이스’로 돌아왔다. 2011년 안드레스 바이즈 감독의 동명의 콜롬비아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밀실에 갇힌 수연(조여정)이 불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약혼자 성진(송승헌)과 미주(박지현)의 은밀한 밀회를 엿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인간중독’에서 부부를 연기했던 송승헌과 조여정은 ‘히든페이스’에서 다시금 결혼을 앞두고 삐거덕거리는 성진과 수연의 관계를 밀도 높게 표현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성진은 어느 날 약혼녀인 수연이 ‘결혼을 못하겠다’는 내용의 영상 편지 한통만 남기고 홀연히 떠난 사실을 알게 된다.

같은 악단의 첼리스트였던 수연의 공석을 채우기 위해 면접을 보던 중, 수연의 소개로 왔다는 미주를 만나면서 잔잔했던 성진의 일상은 물보라친다. 김대우 감독은 “무성의함이 낳은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서로 격리된 채 들리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바탕으로 “인간 본성 안에 잠재하고 있는 소유욕”에 대해 스케치한다.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에서 왼쪽부터 숙부인(전도연), 조씨부인(이미숙), 조원(배용준). 사진제공=영화사봄

● 이성에 억눌린 맨얼굴과 육체의 관계 

각본가로 참여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와 연출작 ‘음란서생'(2006), ‘방자전'(2010), ‘인간중독’에서 김대우 감독은 이성에 의해 억눌러왔던 맨얼굴과 육체를 가까운 거리에서 그려왔다. 김 감독은 에로티시즘을 결합해 감추고 싶지만 끝내 드러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내밀한 영역까지 파고든다. 감춰져있던 가면을 벗어낸 맨얼굴은 위태롭기도 하고 매혹적이기도 하다. 

1991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슬픔에 찬 성모는 서 있었다’로 가작을 수상하면서 각본가로 데뷔한 김대우 감독은 이재용 감독의 ‘정사’,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각본과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의 원안으로 참여한 이력이 있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성에 대해 탐구하는 김대우 감독의 시선은 데뷔작인 ‘음란선생’ 이전에 각본가로 참여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부터 묻어난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프랑스 소설가인 피에르 쇼데를로 드라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의 배경을 조선시대로 각색한 작품이다. 영화는 조선 후기, 가부장적인 가치관에 반항하며 바람둥이로 살아가는 조원(배용준)과 사대부 현모양처 조씨부인(이미숙), 열녀문을 하사받은 숙부인(전도연)의 상반된 삶과 함께 기존의 가치에 균열이 생겼던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뒤엉킨 관계를 포착한다. 해외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영화화된 가운데 배우 콜린 퍼스, 아네트 베닝 주연의 1992년 영화 ‘발몽'(감독 밀로스 포먼)이 대표적이다.

한석규(오른쪽)과 김민정이 주연한 영화 ‘음란서생’의 한 장면. 사진제공=영화사비단길

연출 데뷔작 ‘음란서생’에서도 감독은 명망높고 고귀하던 조선시대 사대부의 얼굴에서 권태로움을 걷어내고 본능을 덧씌운다. 발칙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영화는 사대부 집안의 문장가 윤서(한석규)가 우연하게 ‘난잡한 소설’이라 불리는 음란소설의 존재에 매료되면서 맨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왕의 총애를 받는 정빈(김민정)이 아끼는 그림을 되찾아오라는 임무를 맡게 된 윤서는 범인을 수색하다가 유기전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음란소설을 접한다. 음란소설은 윤서가 갓을 벗어던지고 발칙한 상상을 하도록 하는 촉매제가 되며, 그는 추월색이라는 필명으로 왕의 여자를 주제로 한 소설을 써 간다. 김대우 감독은 윤서를 통해 양반사회에서 지켜져야 했던 규율과 체제가 인간의 본성을 만났을 때, 어떻게 뒤집히는지를 보여준다. 

기존의 익숙했던 ‘춘향전’의 캐릭터들을 낯설게 비튼 ‘방자전’ 역시 김대우 감독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고전 ‘춘향전’을 떠올리면 성춘향과 이몽룡을 떠올리는 관객들에게 주변 인물이던 몸종 방자를 남자다운 매력을 가진 인물로 비틀면서 본래의 시각을 완전히 뒤집는다. ‘방자전’은 춘향(조여정)을 둘러싸고 방자(김주혁)과 이몽룡(류승범)이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애쓰며, 그 과정에서 어긋나고 결합되는 모습이 그려진다. 수위 높은 장면들이 화제가 됐지만 고전에는 몽룡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춘향을 당당하고 적극적인 인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영화 ‘방자전’에서 방자 역의 김주혁(왼쪽부터)과 춘향 역의 조여정. 사진제공=바른손

● 인간의 신체와 심리에 대한 탐구 

조선시대에 머무르던 김대우 감독의 세계는 세 번째 장편영화 ‘인간중독’에 도달해 현대물로 옮겨간다. 베트남전이 끝나가는 1969년을 배경으로 한 ‘인간중독’은 계급의 허들을 뛰어넘는 욕망에 휩싸인 인물들을 그려낸다. 교육대장 김진평 대령(송승헌)은 새로 온 교관 경우진 대위(온주완)의 아내 종가흔(임지연)를 본 첫 만남부터 묘한 이끌림을 느낀다. 

아내 이숙진(조여정)이 있음에도 김진평은 종가흔과 곁눈질로 눈빛을 주고받는다. 간호 업무를 하는 종가흔은 전쟁의 외상을 겪는 환자의 난동으로 인해 위험에 처하고, 그 속에서 귀걸이를 잃어버린다. 귀걸이를 찾아준 것을 계기로 김진평과 종가흔은 가까워진다.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두 남녀의 모습은 가히 위태롭다.

‘인간중독’은 신예였던 임지연을 발굴함과 동시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중심을 잃어버린 두 남녀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김대우 감독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부터 ‘히든페이스’를 경유하면서 시대의 변곡점에도 늘 존재했던 인간의 본성과 본능 그리고 본질이 무엇인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감독이다. 늘 수위 높은 베드신으로 이목을 끌지만, 인간의 신체와 심리에 대해 탐구하며 늘 ‘인간을 구성하는 요인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영화 ‘인간중독'(2014)에서 종가흔 역의 임지연(왼쪽부터)과 김진평 역의 송승헌. 사진제공=아이언팩키지

김대우 감독의 세계는 배우들의 도전 욕구를 자극한다. ‘방자전’과 ‘인간중독’ 그리고 이번 ‘히든페이스’까지 3편을 연이어 작업한 조여정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면서도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발자국을 찍는 감독”이라며 “저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꺼내줄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있다”고 깊은 신뢰를 보였다.

‘인간중독’과 ‘히든페이스’를 통해 연기 도전을 거듭한 송승헌 역시 김대우 감독에 대해 “노출을 위한 노출 장면은 찍지 않는다”며 “모든 장면에 대해 감정적으로, 이야기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해준다”고 말했다. 연기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감독이라고도 했다. “‘인간중독’을 통해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어졌다”는 송승헌은 “‘인간중독’이 아니었다면 불륜남 같은 캐릭터는 맡지 않았을 텐데 그런 기회를 준 감독님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돌이켰다. 

‘히든페이스’에서 가장 대담한 도전에 나선 박지현은 “감독님을 무조건 믿었다”며 “모니터를 신경 쓸 필요도 없이 감독님의 눈을 믿었다”고 했다. 

‘음란서생’부터 ‘히든페이스’에서 자신의 연출 세계를 이루고 있는 김대우 감독. 사진제공=스튜디오앤뉴 
맥스무비
CP-2023-0089@fastview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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