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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인터뷰] 10년 만에 다시 시작한 연기…김금순의 ‘눈부신’ 여우주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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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메소드연기’로 2일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김금순. 정유진 기자 

중학생 때 처음 연극을 접했다. 국어 선생님이 만든 연극반에 들어가면서다.

대사를 외워 연기하는 과정이 신기했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대체 내가 뭘 한걸까’ 이상한 감흥이 올라왔다. 연극에 대해 제대로 몰랐던 그때, 연기를 향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멈추지 않았다. 

연극에 빠진 소녀의 집에는 TV가 없었다. ‘공부에 집중하라’는 아버지의 완고한 뜻이었다. 가족 대부분이 교사로 일하고 있어, 엄격한 아버지는 어린 딸도 비슷한 길을 걷는 교사가 되길 바랐다. 그런데 연극이라니. 아버지는 화를 냈지만 딸의 호기심을 막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은 연극 극단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연극에 푹 빠진 딸만큼이나 아버지도 만만치 않았다. 딸이 연극을 관두길 바라는 마음에 ‘호적에서 판다’는 엄포도 놓았다. 그 무렵 극단 활동에 전념하던 딸은 우연히 주민등록등본을 떼어 보고 화들짝 놀랐다. 가족 관계에서 자신의 이름이 사라진 상태였다. ‘연기를 하면 호적에서 판다’고 했던 아버지가 그 말을 실행에 옮겼다.

“아버지께서 극심하게 반대를 하니까 오히려 그 반대의 힘으로 더 연극에 몰두했어요.” 배우 김금순의 이야기다.

요즘 영화와 드라마에서 보이는 김금순의 존재감이 예사롭지 않다. 방송 중인 tvN 드라마 ‘엄마 친구 아들’에서 모음 엄마 도재숙으로, 얼마 전 막을 내린 JTBC ‘히어로는 아닙니디만’에서는 무서운 과거를 지닌 백일홍으로, 김금순은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돌이켜 보면 2019년 영화 ‘사바하’의 오프닝을 여는 무당 역으로 등장할 때부터 포스는 남달랐다.  

그런 김금순이 마침내 ‘일’을 냈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맞춰 지난 3일 열린 제33회 부일영화상에서 영화 ‘정순’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신인상도, 조연상도 전부 건너뛰고 51세의 나이에 처음 주연한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면서 영화계에 이름을 명징하게 세기고 있다. 이날 남우주연상은 ‘서울의 봄’의 주인공 정우성이 받았다.

영광스러운 무대를 마친 다음날, 부산국제영화제 메인 무대인 영화의전당 인근 카페에서 김금순을 만났다. 연극 배우로 활동하다가 결혼 뒤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10년 동안 연기를 중단했다가 단역부터 다시 시작해 거둔 성취라는 점에서는 그의 이번 수상은 의미가 각별하다. 

“아들 둘을 낳고 밥하고 생활하면서 10년을 보냈어요. 그 덕인지 엄마 역할이나 생활 연기를 잘 할 수 있는 토대를 쌓았죠. 10년 만에 다시 연기를 시작하니까 아버지께서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오래 연기할 줄은 몰랐다고, 그렇게 연기를 좋아하는 줄 몰랐다는 사과였어요.”

소위 ‘경력 단절’의 시간을 딛고 연기를 재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지만, 김금순은 담백하게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다. 집에서 손수 사진을 찍고, 그간 참여한 연극 경력을 적은 프로필을 신인 배우들이 작품을 찾을 때 이용하는 사이트 필름메이커스에 올렸다. 연극 경력 덕분인지 단편영화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단편영화와 독립영화 출연이 시작됐다. 2011년 무렵이다.

“단편영화를 찍으러 갔더니 거마비라면서 돈을 주더라고요. 이전에 연극만 해서인지 연기로 돈을 번다는 개념 자체가 사실 없었어요. 아! 돈을 주는구나… 놀랐죠.”

“영화를 하면서 처음 카메라를 만났어요. 카메라의 렌즈가 마치 눈 같았어요. 너는 누구니? 그런 심정으로 만나는 첫사랑 같았죠. 카메라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게 재밌더라고요. 영화를 시작하고부터 14년이 됐으니, 경력만으론 10대의 배우에요. 하하!” 

영화 ‘정순’으로 제33회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김금순. 이날 아들이 직접 만들어 선물한 의상을 입고 시상식에 올랐다. 사진제공=사람엔터테인먼트 

김금순을 다시 연기하게 만든 두 아들은 장성해 22살, 18살이 됐다. 무럭무럭 자란 아들들을 돌보면서 김금순은 다양한 독립, 단편영화와 드라마의 크고 작은 역할을 마다지 않고 몰두했다. 그렇게 여우주연상까지 받았다.

두 아들은 시상식으로 향하는 엄마아게 특별한 선물을 건넸다. 수트를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첫째 아들은 직접 만든 여성 수트를 엄마에게 선물했다. 둘째는 향기가 좋은 바디 로션을 마련했다. 김금순은 아들들의 선물로 한껏 치장하고 무대에 올랐다. ’10년 경력 단절’을 끝내고 다시 도전한 연기로 빛나는 성취를 거두는 자리는 두 아들의 서포트로 더욱 빛이 났다.

이날 현장에 모인 정우성과 송중기, 김서형 등 배우들은 김금순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 순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고 했다. 

● 영화 ‘정순’… 김금순의 이름 알린 결정적인 작품 

김금순이라는 존재를 영화계에 알린 작품 ‘정순’은 불법 영상 유포의 피해에 노출된 중년 여성의 이야기다. 지방 소도시 한적한 공장에서 일하는 주인공 정순은 함께 일하게 된 영수(조현우)와 호감을 느끼고 가까워진다.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질 무렵 영수가 휴대전화로 찍은 정순의 영상이 공장 사람들에게 유포되고, 정순의 일상은 균열된다.  

영화는 정순이라는 인물을 통해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엄마이고 한 명의 여성이 겪는 비극과 그 비극을 자신의 방식으로 딛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단단한 성장을 그린다. 신인 정지혜 감독의 사려 깊은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무거운 메시지를 거칠지 않게 표현할 수 있을까.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그 과정에서 정순과 비슷한 아픔을 지닌 많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누구나 각자의 삶에 고통이 있잖아요. 그걸 딛고 일어날 수 있을까 싶지만 정순은 일어납니다. 정순의 일어섬에 관객이 공감하고 동감한 것 같아요.” 

김금순은 “정순이는 곧 금순이다”고 말했다. 영화 속 정순과 실제 자신이 많이 닮았다는 의미다. 정순은 어색할 때도 답답할 때도 미안할 때도 웃음을 짓는다. 김금순도 스스로 “웃음이 많은 편”이라고 했다. 그런 웃음이 때론 사람들의 오해를 사지만, 그는 감정을 웃음으로 표현하는 데 더 익숙하다고 말했다.

김금순의 존재를 영화계에 알린 영화 ‘정순’의 한 장면. 사진제공=씨네마루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김금순이 주연한 또 다른 영화 ‘메소드 연기’가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됐다. 배우로 고군분투하는 아들을 둔 엄마 역할이다. 극중 이동휘와 윤경호가 그의 아들로 호흡을 맞췄다. 모자 관계이지만 이들은 실제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 때문에 윤경호는 촬영마다 김금순에게 “누나, 미안해”라고 사과했다. 이번에도 역시 웃음이 넘친 촬영 현장이었다.  

김금순은 요즘 마트를 가거나 간혹 지하철을 탈 때면 친근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의 반응을 접한다. “가장 비현실적인 순간”이라고 했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이 한창 방송 중일 때의 일이다. 후배와 지하철을 탔는데 누군가 후배에게 쪽지를 전달했다. 그 쪽지에는 출퇴근할 때마다 지하철에서 꼭 챙겨보는 드라마의 주인공을 지하철에서 만난, “믿을 수 없는 순간”에 대한 감격이 적혀 있었다. 

뜨거운 반응을 접할 때면 한편으론 연기 욕심도 늘어난다. 평소 최민식이 영화 ‘올드보이’에서 선보인 ‘장도리 대결’ 같은 거친 액션 연기에 도전하고 싶다고 자주 밝힌 김금순은 요즘에는 “지구가 아닌 낯선 우주 공간에 머무는 인물도 연기하고 싶다”고 바라고 있다.

이번 여우주연상을 계기로 김금순의 향후 활동에도 기대가 향한다. 여러 반응 가운데 “50대 여성, 엄마들에게 자극이 되고 귀감이 된다”는 평가가 김금순을 가장 기쁘게 했다. 지금 이런 순간을 가장 기뻐할 사람은 ‘호적에서 파겠다’고 딸을 말렸던 아버지다. 하지만 지금 딸의 곁에는 아버지는 계시지 않는다. “몇 년전 아버지께서 하늘로 가셨어요. 살아 계셨다면 누구보다 가장 기뻐하셨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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